머독가와 방가, 어둠의 세습자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9-13)
토니 블레어가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20년에 이르는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끝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언론의 지원이었다. 보수당만 지지해온 타임스지를 비롯하여 여자 누드 사진을 3면에 처음으로 실어 부동의 판매 부수 1위 자리를 지켜온 타블로이드지 선까지도 블레어를 밀었다. 블레어는 1994년 노동당 당권을 잡을 당시 언론 특보로 타블로이드지 미러의 기자 출신인 알리스터 캠벨을 통해 반노동당 성향의 신문을 노동당 쪽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루퍼트 머독의 호응이 없었더라면 제아무리 블레어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호주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 시민권을 딴 머독은 호주,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영국에서도 B스카이B 방송을 비롯하여 타임스, 선, 뉴스오브더월드 등 영국의 유력 신문을 갖고 있다. B스카이B 방송은 연간 매출이 59억 파운드로 BBC의 연간 예산 36억 파운드를 압도하며 타임스는 50만 부, 일간지 선과 일요일에만 나오는 뉴스오브더월드는 각각 300만 부 가까이 팔린다. 영국 정치에서 머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블레어는 일찌감치 간파했다. 블레어의 한 비서는 총리실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늘 머독의 뜻을 중요한 변수로 고려했다고 털어놓았다. 머독은 영국이 이라크전쟁을 벌이기 전 열흘 동안 블레어와 세 번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번 총선에서 노동당에 참패를 안기고 총리 자리에 오른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의 승리도 머독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캐머런은 2007년 보수당 당권을 잡을 당시 뉴스오브더월드의 주간을 지낸 앤디 쿨슨을 언론 특보로 영입했다. 쿨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머독과 캐머런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캐머런 총리 밑에서도 14만 파운드라는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공보실장으로 있다. 쿨슨은 머독의 심기를 살피고 받드는 임무를 띠고 총리실로 내려간 머독의 가신이다. 머독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영국을 지배하는 어둠의 황제다.
보이지 않는 머독의 손
그런데 최근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앤디 쿨슨이 뉴스오브더월드 주간으로 있으면서 영국의 주요 정치인과 왕실 인사,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의 전화를 감청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영국의 가디언지에서도 몇 년 전 사립탐정을 동원한 머독 계열 신문의 공공연한 감청 행각을 고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머독과 신문사 고위 간부들은 의욕이 앞선 일부 기자의 무리수였으며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뗐다. 거기다가 앤디 쿨슨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나니까 그냥 흐지부지되었다.
둘째, 경찰에서도 조사에 미온적이었다. 사립탐정들한테서 압수한 자료에서 감청 대상자로 추정되는 수천 명의 이름과 비밀번호까지 나왔는데도 경찰은 자신이 감청당했다면서 뉴스오브더월드를 고발한 한 유명인사의 개인적 사건으로만 문제를 축소했다. 뉴스오브더월드는 변호사비를 포함하여 100만 파운드에 이르는 합의금을 지급했고 경찰에게도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지 말아 달라며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영국 경찰청 차장이었던 앤디 헤이먼은 지금 머독이 소유한 타임스지에서 칼럼을 쓰고 있다. 영국 민주주의의 보루인 공무원의 중립성이 시궁창에 처박힌 것이다.
셋째, 의원들도 머독의 보복이 두려워 문제를 끝까지 추궁하지 않았다. 감청 대상에는 의원들 이름도 대거 올라가 있었는데도 의회의 청문회 소속 의원들은 머독의 총애를 받는 레베카 웨이드라는 고위 간부가 출석을 거부하면서 만약 출두를 계속 요구할 경우 당신들의 사생활을 모두 까발리겠다면서 협박하자, 죄가 있건 없건 머독에게 밉보이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결국 꼬리를 내렸다. 노동당도 지금은 야당이라서 정치인들에 대한 감청에 분개하지만 당시는 여당이었으므로 머독에게 잘 보이려고 그냥 넘어갔다.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언론에서 나온다
한국에서는 조선일보 사주가 한때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루퍼트 머독은 밤의 황제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국은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동아일보, 중앙일보까지 가세하여 개혁 진영이 절대적으로 매체 여건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개혁 진영이 1997년과 2002년 두 번 승리했지만 머독이 보유한 언론 매체를 등에 업지 않은 정치 세력은 영국에서 절대로 집권하지 못한다. 머독의 정치적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선다. 호주에서도, 폭스 뉴스를 가진 미국에서도, 머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머독이 호령하는 뉴스코퍼레이션 소유의 언론 매체들은 머독의 끝없는 물욕을 정당화하고 보장하는 수단이다.
따지고 보면 ‘매체’를 뜻하는 영어 media도 원래는 그런 뜻으로 쓰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보면 media(단수형은 medium)는 처음에는 ‘매질’이라는 뜻으로 썼다. 조지 채프먼이라는 영국 작가가 1595년에 낸 <오비디우스의 감각의 향연>이라는 시집에 나온 Sight is one of the three senses that hath his medium extrinsecally.(시각은 외부에 매질을 둔 세 감각 중 하나다)가 ‘매질’이라는 뜻의 최초 사용례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온다. 비슷한 무렵 media는 ‘수단’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1605년에 Yet is not of nessatie that Cogitations bee expressed by the Medium of Words.(그러나 명상은 꼭 말이라는 수단으로 표현된다는 법은 없다)라고 쓴 사용례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온다.
영어 media가 ‘매체’ 다시 말해서 대중 여론을 움직이는 수단이라는 특별한 뜻을 새로 얻게 된 것은 자본주의가 궤도에 오른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보면 1906년 the best advertising medium in the country(국내 최고의 광고 매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advertising medium을 ‘광고 수단’이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니까 아직도 ‘매체’라는 말로만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런 뜻은 아니었다.
‘매체’가 media가 가진 기존의 어느 뜻과도 대체할 수 없는 독자적 뜻을 갖게 된 것은 mass media라는 복합어를 통해서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mass medium을 찾으면 1923년에 처음으로 the several million readers of a big mass media(거대 대중 매체의 수백만 독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1차대전에서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리한 영국은 재산권과는 무관하게 투표권을 크게 확대했다. 남자는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었고 남자의 공백을 메워 후방에서 공장에서 열심히 일한 여자도 약간의 재산이 있는 30세 이상이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었다. 770만 명이던 유권자가 2,140만 명으로 껑충 뛰었다.
유권자가 대거 늘어난 뒤 처음 치러진 1918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57석을 얻었다. 그러나 1922년 총선에서는 62석에 그친 자유당을 밀어내고 142석으로 제2당이 되었다. 30세 이하의 여성에게도 재산과 무관하게 남자와 똑같이 투표권이 주어진 1929년 총선에서는 287석을 얻어 260석의 보수당을 누르고 처음으로 제1당으로 올라섰다. 노동당의 약진에는 신문이라는 대중 매체의 확산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새롭게 참정권을 얻은 유권자 대중은 신문을 통해서 정치적 안목을 키웠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지 타임스지는 1863년 판매 부수가 4만 부였고 1921년에는 11만 3천 부, 1930년에는 18만 7천 부, 1939년에는 20만 4천 부로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러나 1910년 인쇄식자공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낸 소식지로 출발한 데일리헤럴드(선의 전신)는 1921년 21만 1천 부, 1930년 108만 2천 부, 1939년 185만 부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금은 머독에게 넘어가 삼류 타블로이드로 전락했지만 한때 데일리헤럴드는 노동당을 비롯한 영국 진보 진영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노동당을 대변하는 신문이 없었으면 1920년대와 30년대에 노동당이 약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론과 정당은 같이 움직였다. 언론은 정당이 정치적 의지를 관철시키는 수단이었다. 신문이 대중 매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권력은 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체에서 나왔다.
한국의 주적
대중 매체가 소수에게 장악당한 나라는 무늬만 민주주의지 실상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머독이 소유한 미국과 영국의 매체들은 북한의 세습제를 비난하지만 머독 황제가 구축한 언론 제국도 사실은 세습제로 굴러간다. 머독의 아버지는 호주의 지방 신문사 사주였다. 머독의 자식들은 대를 이어 머독의 제국을 이끈다. 장남 제임스의 연봉은 무려 140만 파운드다. 영국 정치인들은 여왕은 안 무서워해도 머독과 그 수하들은 무서워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허수아비 군주지만 루퍼트 머독은 실세 군주다. 머독은 암흑의 황제다.
영국 민주주의가 그래도 버티는 것은 공영방송 BBC가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BBC는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영국방송공사)의 약칭이지만 원래는 corporation(공사)가 아니라 마르코니, 제너럴일렉트릭 등 민간 회사가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로 사업을 벌이려고 1922년에 세운 company(기업)였다. 그러나 초대 사령탑을 맡은 퇴역 군인이며 보수당 의원 출신의 존 리드는 BBC가 사기업이었는데도 공공성을 중시했다. 그래서 1926년 총파업이 일어났을 때 광산주만이 아니라 노조를 비롯하여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방송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정부의 압력을 받고 출연자를 바꾸기도 했지만 그것은 정부를 자극할 경우 처칠 같은 강경파가 BBC를 농단할 것을 리드가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총파업이 끝나고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3,696명이 BBC를 칭찬했고 176명이 비판했다. 리드는 방송의 공공성을 항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이듬해 BBC를 공사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개인이나 정파의 사익보다 영국이라는 공동체의 수호에 헌신하는 BBC의 전통을 만들었다. 영국 국민이 적지않은 돈을 해마다 수신료로 내는 것도 그런 BBC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 사장은 나를 내칠지 몰라도, 동료는 나의 등을 찌를지 몰라도, 여왕은 나를 무시할지 몰라도, BBC는 영국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인 미국의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선뜻 왕위에서 물러난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에드워드 7세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여 왕위를 유지하면서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여기에 제동을 건 것이 영국국교회 수장과 BBC 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영국 국왕은 그렇지 않아도 계급 갈등이 극심하던 영국 사회에서 통합의 마지막 구심점 노릇을 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이혼 경력이 있고 더구나 재혼을 한 유부녀와 영국의 노총각 국왕이 결혼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모범적으로 가정생활을 하던 조지 6세가 왕으로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존 리드는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한 다음에야 대국민 라디오 연설 기회를 주었다. BBC 사장에게도 BBC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매체였다. 그러나 BBC 사장의 뜻은 사익이 아니라 공익에 있었다. 돈벌이라는 사익을 위해서라면 온 가족이 보는 일간지에 알몸 사진을 싣고 불법 전화 감청도 불사하는 머독과는 달랐다.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이란의 핵무기가 아니라 이란의 핵무기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떠들어대는 머독의 매체다. 한국 민주주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떠들어대는 방가 일족에게 사유화된 매체 조선일보다. 민주주의의 주적을 정확히 겨누어야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 참여정부 시절 진보 언론도 근거 없는 조선일보의 노무현 씹기 놀이에 맞장구치고 때로는 앞장서기도 했다. 국가 지도자를 씹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근거 없이 물어뜯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혼자서 한국 사회의 주적 조선일보와 맞섰던 노무현은 조선일보가 맞았어야 할 화살을 엉뚱하게도 우군으로부터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졌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짓밟는 밤의 대통령, 아니 밤의 독재자를 먼저 무너뜨려야 한다.
영화배우 문성근이 벌이는 야당 연대 압력 운동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www.powertothepeople.kr)을 키워서 2012년에는 반드시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는 이제 정권을 되찾았으니 정권을 감시해야 한다면서 또다시 조선일보의 망나니짓에 덩달아 민주 정부를 까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국적은 달라도 머독가와 방가는 낮에 이루어지는 북한의 세습제를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밤에 자기네만의 왕조를, 공정한 경쟁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짓밟고 가진 자의 후손만이 기득권을 대대손손 이어가는 논리를 옹호하고 확산하는 어둠의 세습자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루퍼트 머독이 건재하는 한 영국 민주주의는 풍전등화다. 조선일보가 건재하는 한 한국 민주주의는 모래성이다.
개곰